EULA, 그 자체로
게임이 완성됐습니다. 트레일러를 만들어야 했죠.
처음에는 스크린샷을 배열하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게임 화면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거죠. 뻔한 방식이었고, 지루했습니다.
이 게임은 메타픽션에 가깝니다. 트레일러도 그렇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약관, 그 자체로
EULA는 "최종 사용자 라이선스 계약"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아무도 읽지 않는 그 문서. 그냥 【동의】를 누르죠.
트레일러도 똑같습니다. 법률 문서의 형식. 딱딱한 문체. 조항 번호. 그 안에 게임의 핵심 질문들을 숨겨넣었어요. 텍스트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모순이라고 말하지도 않죠. 그냥 사실만 적습니다.
트레일러는 게임의 내용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보다 이 게임을 잘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귀사는 AI 기술을 권장 혹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귀하의 몫입니다."
게임이 말하는 그대로입니다. 트레일러도 게임처럼 행동합니다.
연출
아이디어가 없어 고민이었습니다. 영상 편집 도구의 기본 프리셋들을 둘러보던 중, 영감을 얻었습니다. 영화적 연출, 광고 영상, 뮤직 비디오의 문법을 차용한 거죠.
메타픽션에 가까운 게임이니, 영상도 메타픽션적으로 접근했습니다. 게임을 직접 드러내지 않지만, 그 방식 자체가 게임을 설명합니다.
영상이 컨텐츠가 되는 순간
트레일러는 60초입니다. 나레이션 없고 텍스트만 있죠. BGM은 이 게임의 분위기를 충실히 따르고요. 법률 문서를 읽는 듯한 경험. 그런데 그 문서가 당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동의】는 시스템의 발등에 입을 맞추며 굴복한다는 뜻입니다.
【거절】은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것을 택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든 귀하의 선택이며,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영상 자체가 하나의 컨텐츠로 남기를 바랐습니다. 제법 실현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