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Organic의 차이를 만들기까지
“모드를 바꿨는데 그림만 다르고, 내용은 뭐가 다른지 잘 안 와닿아요.”
AI와 Organic의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기존 버전에도 주아가 사용하는 물건을 다르게 하는 차이는 있었어요. Organic에서는 정체불명의 초록 음료를 마시고, AI에서는 블루불을 마시는 식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반대쪽 모드까지 확인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AI 모드 텍스트를 AI에게 써보게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AI 모드의 텍스트를 AI에게 써보게 했습니다. 글작가와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갈 위치와 장면의 역할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AI에게 한쪽 버전을 써보게 했어요. 작성자와 편집자가 다르면 문장도 달라질 테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맛이 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AI가 글을 못 써서라기보다, 한쪽 버전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방식 자체가 EULA와 맞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원한 건 같은 사건을 겪는 같은 주아를 다르게 편집하는 것이었는데, 작성 방식이 나뉘자 주아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유와 다른 인물에게 반응하는 방식까지 달라졌어요.
캐릭터가 달라 보이는 게 꽤 큰 문제였어요.
차이를 더 만들어보기
그래서 유저 피드백을 다시 읽고 기존 원고를 훑어봤습니다. 패러디를 한쪽에서 사용하면 반대쪽에는 그 캐릭터의 라이벌을 붙여보자는 쪽으로 정리했어요.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대표적인 말투와 행동까지 함께 바꾸는 방식이에요. 알아보기 쉽고 쓰기도 쉬워서 바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패러디 라이벌은 단발성 개그였습니다. 모든 장면에 억지로 넣을 수는 없었고, 작품 전체의 모드 차이를 맡기기에는 부족했어요.
그러다 작업 후반에는 짧게 끼어드는 단발성 멘트의 화자와 내용도 모드에 따라 나눴습니다. 같은 장면이라도 Organic 쪽에는 코이의 걱정이나 기린의 정리가, AI 쪽에는 아이의 농담이나 태클이 들어가는 식이에요. 어떤 곳은 화자만 바꾸고, 어떤 곳은 한쪽에만 짧은 멘트를 넣었습니다. 긴 장면을 새로 쓰지 않아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장면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빠진 장면을 다시 꺼내기
패러디와 단발성 멘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무삭제 장면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사건이나 주아의 성격을 바꾸면 다른 이야기가 되고, 문장 몇 개만 바꾸면 반대쪽을 볼 이유가 없었어요. AI 쪽 주아에게 효율이나 지표 같은 말을 더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면 두 모드의 주아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새 문장을 억지로 더 쓰는 대신, 이미 썼다가 빠진 내용을 다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Git 커밋을 하나씩 뒤져 보니 삭제본이 따로 남아 있다기보다, 장면을 고치는 과정에서 대사가 줄거나 통째로 빠진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빠진 이유도 내부 피드백, 유저 피드백, 글작가가 최종본을 검수하면서 직접 뺀 경우 등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빠진 내용이 전부 재미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본편에 넣기에는 길거나 옆길로 새지만, 주아의 행동이나 장면의 이상한 맛을 더 보여주는 내용도 있었어요. 그런 부분만 Organic에 선택적으로 되살리기로 했습니다.
우선 챕터 0부터 적용해봤습니다. 본편의 흐름 때문에 잘라냈지만, 인물의 성격이나 장면의 분위기를 더 보여주는 내용부터 골라 되살렸어요.
다만 모든 삭제 내용을 되살린 건 아닙니다. 웃기거나 인물과 관계를 더 보여주면서도, 추가한 장면이 끝난 뒤 본편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와야 했어요. 설정 오류나 중복 설명처럼 이야기와 맞지 않는 내용은 그대로 버렸고요.
그리고 이건 대사만 추가하는 작업도 아니었습니다. 무삭제 장면이 재생되는 동안 모드 전환을 막고, 끝난 뒤 공통 대사로 돌아오며, 저장을 불러와도 흐름이 어긋나지 않도록 연출 상태까지 함께 맞춰야 했습니다.
같은 주아를 다르게 편집하기
최종적으로 AI는 정리된 편집본, Organic은 정리 과정에서 빠졌던 재미있는 장면을 선별해 되살린 편집본으로 두었습니다. 같은 주아와 같은 사건, 같은 인과는 유지하고, 모드를 바꿨을 때 실제로 다른 장면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문장을 많이 쓰면 차이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끝까지 해보니 중요한 건 문장의 개수가 아니었어요. 같은 이야기를 유지하면서도 반대쪽을 확인할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 모드를 바꾸면 “그림만 다르네”가 아니라, “반대쪽에는 이런 장면이 있었네”라고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꽤나 머리를 싸매야 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드 간 차이를 기대해주셨던 분들께 이번 변경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고, 기억에 남는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AI가 절반을 썼다는 상징성도 끝까지 집어넣고 싶었습니다만(다른 누구도 아닌 저희가 너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니까요... 정말 정말 너무 아쉬웠지만 고집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 부분을 기대하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음 개발일지는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남은 이야기거리를 풀어 보려 합니다.